영화 : 사랑의 고고학
감독 : 이완민
출연 : 옥자연, 기윤
관람일 : 2023년 3월 31일 (2023-42)
개봉일 : 2023년 4월 12일
시놉시스 : 만난 지 8시간 만에 사랑에 빠진 영실과 인식. 인식은 그런 영실을 자유로운 영혼이라 확신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실에 대한 인식의 집착은 심해지고, 영실은 뒤틀린 관계 속에서도 인식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하지만 영실의 노력에도 헤어진 두 사람. 8년 동안의 불온했던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실은 자신의 사랑에 대해 정면으로 응시할 준비를 시작한다.


영화 <사랑의 고고학> 리뷰
4월 12일 개봉하는 한국 영화 <사랑의 고고학>을 시사로 앞서 만나고 왔습니다. 저는 이 영화 보고 나서 이완민 감독님의 뚝심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리뷰 쓰려고 알아봤더니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수상했더라고요. 역시 내가 본 감독님의 영화를 향한 묵묵한 뚝심이 맞았구나 새삼 다시 실감하게 되었어요. 이 영화 <사랑이 고고학>이란 제목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사랑과 고고학의 조합이라 뭔가 심오할까? 혹은 고고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일까? 뭐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가 있죠. 저도 처음엔 제목에 조금 의아해하며 영화를 봤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영실(옥자연)의 8년의 사랑을 다룹니다. 아니지, 8년보다 어쩌면 더 넓은 시간을 다룰지도 몰라요. 영화 내내 영실의 상대가 그녀의 과거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했고 그 과거를 그녀는 늘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니까. 그렇게 고고학이 땅속에 묻힌 과거 유물을 탐구하고 가치를 쫓고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그녀의 8년의 시간을 탐구하고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에 영실이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라 보면 될 거 같더라고요. 카피처럼 그 8년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라고 말이죠.


# 8시간, 8년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또 다른.
영화를 보면 영실(옥자연)과 인식(기윤)은 8시간 만에 서로에게 빠집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사랑이 정리가 되고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 세상엔 사랑하는 방식이 너무나 다양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사빠라는 단어처럼 금세 사랑에 빠지는 케이스도 많거든요. 에이 그래도 8시간은 너무 짧다 싶죠? 맞아요. 서로의 성향이나 서로의 이야기를 한참 더 나누고 더 이야기해보고 더 만나보고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했더라면 영실은 다른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봐도 인식의 사랑은 한참이나 미성숙됐다고 봐요.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케이스인데. 그러면서도 어쩜 저렇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확신을 차있을까 싶어서 보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어요.

영실도 그래요. 그녀는 세상 별 욕심 없이 어떤 한 직업에 몰두하여 뭔가를 이뤄볼 마음이 없습니다. 가끔 학생들 수업이나 시험장 감독 알바 그리고 주변 사람들 추천으로 이뤄지는 고고학 관련한 유물을 찾아 나서는 프로젝트를 한시적으로 한다거나. 있나 없나 모를 존재처럼 존재감을 내색하지도 않고 무채색에 가까운 사람이죠. 우유부단해서 헤어진 남자를 집에서 내보내지도 잘 못하고요. 그래서 인식을 만나면서도 헤어진 남자와 함께 사는 이상한 풍경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아무리 성격이 그렇다고 한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는 인식과 영실. 하지만 사랑은 늘 순탄치 못하고 삐그덕 거립니다. 계속해서 영실의 과거를 들먹이며 영실의 행동을 지적하고 낯부끄럽게 말을 하는 인식, 그런 인식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화 한번 내지도 않고 그저 속으로 삭히거나 입을 다물어버리는 영실. 이 관계가 유지가 과연 될까? 싶은데 참 아슬아슬하게도 두 사람의 로맨스는 계속 이어집니다. 아이러니하게 유야무야같이 늙어가는 거죠.

인식을 바라보는 영실의 마음은 그랬을 거예요.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이야기하며 이젠 딱 한 사람만 바라보겠다는 말로 그녀에게 집착을 하기에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연민도 생기고요. 인식도 스스로가 자꾸 그런 지질한 말로 영실을 대하는 게 잘못임을 알지만 사람 성격이란 게 어디 쉽게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오죽하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잖아요.

사실 영화 <사랑의 고고학>을 보면 영실은 이 사랑에 대해 어떤 마음이고 어떻게 계속해 나갈까? 하는 궁금함이 생겼어요. 보고 있는 내가 이토록 화가 치밀고 영실의 캐릭터에 속이 상한데 정작 영화 속 영실의 마음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거죠. 그런데 영화는 참 영리하게도 영실의 성장을 그려냅니다. 성장보다는 영실이 지난 사랑들을 통해서 만들어낸 영실의 사랑에 대한 본질을 쫓아가고 있다로 봐야 할까요? 인간은 계속해서 학습하고 나아가잖아요. 그런 걸 성장이라고 하는데 이런 성장에는 어떤 계기와 뒷받침이 있어야 하잖아요.

너무 화가 치밀어 삭히고 입을 다물고 사랑에 대해 함구했던 그 시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영실은 계속해서 나아간 거라고 봐야겠죠. 땡볕에서 몇 시간을 삽질하고 과거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그 흔적들을 통해 본질을 들여다보고 파악하고 어떤 결론에 다다르는 것처럼, 영실이 겪은 지난 8년 아니 이전부터의 시간은 영실대로의 삽질과 과거의 복기 그리고 파악하고 다음 사랑에 대처하는 자세를 준비한 거라고. 고고학처럼 영실의 사랑을 그렇게 찬찬히 들여다보는 영화가 바로 <사랑의 고고학>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감독의 뚝심이라 이야기할 영실의 사랑의 시간을 묵묵하게 러닝타임 안에 욱여넣은 것을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봅니다. 물 흐르듯 가만히 두 사람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거 나쁘지가 않았고 전혀 지루하지도 않았네요. 확실히 옥자연 배우의 말간 사랑의 생경한 모습이 신선했고 진득거리고 감정을 소비하게 만드는 인식을 연기한 기윤 배우의 연기도 인상 깊습니다. 두 배우의 앙상블이 나쁘지 않아서 더욱 몰입감을 더한듯하고요. 엔딩의 여운 또한 이 영화 <사랑의 고고학>을 곱씹어 보는데 여러 다양한 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아 신선했습니다.
이상으로 영화 <사랑의 고고학> 리뷰는 여기에서 마치고요. 기자 간담회에서 재미있었던 질문과 답변들을 가볍게 스케치하는 것으로 마무리할게요.
사랑의 고고학 기자 간담회

Q) 사랑의 고고학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구상하고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완민 감독님 :
전작 개봉 마치고 실질적인 쓰기 행위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고요. 다만 구상이라거나 혹은 자료수집은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10년 정도의 시간을 걸쳐서 진행했어요. 구체적인 계기로는 보통 어떤 이런 작업을 해야지 하고 책상에 앉기보다는 책상에 앉은 후에 지금 나에게 제일 걸리는 게 뭔가 생각하는 편인데 그 당시 가장 걸렸던 것들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소진되었다 느꼈고, 고립되어 있다, 어떤 공포 같은 게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내가 과연 사람들이 기대하는 에너지를 낼 수 있을까 하는 공포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관성적인 위축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공포도 같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작업을 하게 되었던 거 같아요.

Q) 제목의 사랑과 고고학 두 단어를 연결시킨 계기
이완민 감독님 :
사실 여러분들이 보셨을 포스터가 잘 표현해 주는데요. 어떤 과거 현재 미래를 놓고, 고고학적으로 표현을 했다고 간단하게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이걸 조금 더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당시 저에게 들었던 생각은 어떤 내밀한 관계들의 여파가 얼굴에 새겨진다, 표정이나 태도에 새겨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 저를 들여다봤을 때 제가 잘 웃지를 못했는데 다시 웃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랬을 때 어떻게 하면 다시 웃을 수 있을까를 알기 위해서 과거의 어떤 내밀한 관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던 거 같아요. 연애 말고 다른 어떤 내밀한 관계, 자신과의 관계까지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고고학적으로 느껴져서 사랑의 고고학이라고 제목을 짓게 된 거 같아요. 극 중의 인물의 직업을 고고학자로 설정한 것은 그 이후에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영실(옥자연)을 통해서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연기 변신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까지 수상하셨는데 시나리오 읽고 첫 느낌과 출연하고자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옥자연 :
시나리오를 읽고 첫 느낌은 굉장히 반갑다 와 고맙다는 거였어요. 어떤 글을 읽고 잘 썼다 감탄하는 적은 많지만 사실 이런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기는 쉽지 않은데 너무 그런 느낌을 주는 글이었고 그 글이 저를 불러 줬기 때문에 너무 감사하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캐릭터도 너무 좋았어요. 독립 연구자로 살아가는 영실의 삶이 사회에서 일반적인 인생의 루트를 밟아가지 않잖아요. 그런 것들이 사실 배우들이 많이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고 영실이 긴 연애 속에서 겪는 일들이 아주 디테일한 씬들로 차곡차곡 그려져있는데 상당히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았습니다.



Q) 장편 영화 <사랑의 고고학>으로 첫 주연을 맡은 인식으로 서울독립영화제 독립 스타상을 수상하셨는데, 인식의 캐릭터는 어떤 인물이라 생각하는지 캐릭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윤 :
한마디로 인식의 캐릭터를 이야기하자면 유약한 사람이라 생각을 했고 인식이 느끼는 불안감이나 인식이 영실에게 의심하고 집착하는 것들이 유약함에 비롯되었다 생각했었고, 전체적으로 일단 저는 감독님에게 의지를 많이 했고요. 감독님과 1:1로 리딩을 하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었고 대사 하나하나 빠짐없이 그 안에 들어 있는 서브 텍스까지 정말 하나 빠짐없이 다 이야기 나눴고 제가 인식의 심리 상태나 그리고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해하기를 힘들어했는데 그런 도움이 될 수 있게 감독님이 레퍼런스 영상도 많이 보내주셨고 그렇게 인식의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었습니다.

Q) 감독님 자전적 스토리가 투영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완민 감독님 :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워낙에 내면을 다루고 내적인 관계를 다루는 영화다보니까 저는 제 자신과 제 주변에 해가 될까 하여 굉장히 고민들을 하고 처리 과정을 거쳤던 거 같아요. 많은 자료를 수집해서 최대한 그것들을 반영해서 어떤 특수성은 최대한 희석시키고자 노력했던 거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자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문제의식이라든지 혹은 고민들은 많이 담겨있다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Q) 시나리오가 좋고 하고 싶은 배역이었을 거 같은데 사실 굉장히 연기하기 어려웠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하는 데 감정을 끌어낸다는 게 사실 본인과의 성격이 비슷하지 않다면 답답하기도 하고 그랬을 거 같은데 어떠한 감정으로 연기했는데 캐릭터에 어떻게 이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옥자연 :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굉장히 정확하게도 저도 그런 답답함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질문을 들으면서 좀 놀랐고 그게 제가 연기하면서 재미있었던 부분이었어요. 실제로 너무 인식과 함께 있는 씬들에서 많이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데 사실 그것이 시나리오에 정확하게 표현된 영실의 시선과 조금 다르거든요. 영실은 그 시기에는 그 상황에서는 답답함을 느낀다기보다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더 인식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런 면모들이 있는데 정작 촬영하려고 하면 기윤 배우님 얼굴을 보고(웃음)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제가 화가 나는 거예요.

이게 뭘까 이게 뭘까 했을 때 사실 요즘은 연인 관계에 대해서 예전보다 훨씬 더 사회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분석하기도 하는 용어들이 있기도 하지만 5년 전, 1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고 저도 사실 영실의 상태가 나의 5년 전 정도라 생각해 보자라고 했을 때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던 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거나 밖에서 볼 때는 답답하지만 그 당시에는 미처 캐치하지 못한 것들이 있고 관계에 대해서 제대로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을 때 나는 이런 행동을 하겠구나 라는 것들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영실을 굉장히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장에 가면 화가 나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나를 깎아 나가고 맞춰 나가는 게 재미있는 과정이었어요.
이상으로 영화 <사랑의 고고학> 리뷰 및 기자 간담회 스케치를 마치도록 할게요. 주말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