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치히로 상
개봉 : 2023년 2월 23일
감독 : 이마이즈미 리키야
배우 : 아리무라 카스
"시간이 지나 또다시 변해질 감성에 대한 기록. 혹은 놓쳤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 그 조각들을 담아내는 챕터입니다. 개봉영화 말고 뒤늦게 혹은 다시금 챙겨 본 영화에 대한 짧은 저의 이야기를 담을게요!"
250번째 리플레이 영화는 넷플릭스 영화 <치히로 상>입니다. 이 작품 지난 2월 말에 공개된 작품인데 찜 해놓고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만났네요. 영화 보면서 내내 많은 생각이 떠올랐던 작품이었어요. 지금 내가 가는 길에서,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에서부터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봤는가?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다양한 관점으로 많은 질문과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네요.
일본 어느 지방 소도시 작은 마을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는 치히로(아리무라 카스미)는 전직 성 노동자로 일을 한 인물입니다. 대게 그런 과거의 직업은 본인 스스로가 함구하고 비밀로 하는 게 대부분이죠. 그런데 여기 치히로는 그런 전직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합니다. 어둡거나 상처받아 보이지 않고 밝고 맑으며 구김 없이 손님 응대로 아주 수완이 좋습니다.
당연히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예쁘고 말도 예쁘게 하니 도시락 가게는 늘 문전성시입니다. 마을 남자들이 어떻게든 그녀에게 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려고 하고 나중에 맥주라도 한잔 같이 마시고 싶어도 하지만 치히로는 적당히 알아서 잘 그런 접근도 끊고 맺을 줄 알고 때론 화끈하고 매운 입담으로 상대를 제압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치히로를 보면서 참 예쁘다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녀의 눈높이였던 거 같아요. 허름하고 제때 씻지도 못해 아이들에게 놀림당하는 노숙인을 집으로 모시고 가 목욕을 시켜주고 맥주를 권하고 그리고 식당에 판매하는 도시락을 대접합니다. 어른에게 짓궂게 구는 아이에겐 호되게 혼도 내지만 상처받지 않게 아이를 다독일 줄도 알고요. 그래서 그녀 주변은 언제나 살랑 부는 봄인 것만 같아요.
하지만 완벽한 인간은 없잖아요. 치히로 역시 그래요. 엄마의 부고 소식은 슬픈 듯 슬퍼 보이지 않는 무심해 보이지만, 침잠하는 슬픔에 하염없는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에 침대에서 옴짝달싹 하지도 못하고요. 그래서 그녀의 전사가 궁금하기도 해요. 어린 시절의 가족들에게서 큰 상처가 있었는지, 왜 성 노동자로 일을 하게 된 것인지, 그리고 이 작은 소도시에 흘러오기까지 뭐 그런. 누구에게나 있을 그런 인생의 역사 말이죠.
하지만 영화 <치히로 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그녀 곁에 있는 그녀가 가만히 끌어안는 이들이 그녀의 현재이고 과거는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때때로 그녀를 찾아오는 죽음이란 이별도 꽤 익숙해 보여서,
그런데 그런 죽음 앞에서는 익숙해지려 해도 잘 익숙해지지가 않던데 그런 걸 떠올려보면 우리에게 봄 같고 따스한 위로의 다른 이름이었을 '치히로'라서, 괜히 내가 한번 꼬옥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단 생각도 들었어요. 속은 어쩌면 새까맣게 그을렸을지도 모를 텐데, 세상에 얼마나 초로해져야 치히로 같아질까 싶어서.
며칠간 보이지 않는 노숙자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다가 어느 허름한 폐가 주변에서 객사한 외로운 죽음 앞에 안식을 바라는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땅에 묻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라면 가게로 가 맥주 한 잔과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덤덤한 모습에 누구 하나 궁금해하지도, 알지도 못할 그 외로운 죽음 앞에 당신이라도 기억해 주고 보내주는 게 참 고맙다는 생각에 조금 든든해지는 기분이랄까.
사실 영화 <치히로 상>을 보고 있으면 치히로의 모습에 각기 다른 생각과 각기 다른 해석을 할 여지가 많더라고요. 내가 볼 때는 수고스럽고 고되지만 따뜻한 모습이 어떤 이들에게는 괴이하고 을씨년스럽게 다가갈 수도 있고, 내가 바라보는 치히로의 호의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례로 보일지도 모르고요. 그런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가 공존하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이 세상은 정말 다양한 시선과 마음이 존재하는 것처럼.
넷플릭스 영화 <치히로 상>은 그렇게 아리무라 카스미의 원맨쇼 같은 활약이 이어지는데요. 여기에 릴리 프랭키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면서 반가움을 주더군요. 릴리 프랭키는 이제 마치 일본 영화의 예전 '키키 키린'처럼 빠져서는 안 될 시그니처 같은 배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존재만으로 영화의 무게감을 깊게 만드는듯한 느낌이에요.
제 마음이 조금 이런 영화가 필요할 때 만나서 그랬는지 몰라도 저는 이 영화 <치히로 상>을 위로받으며 만난 거 같아요. 왜 사람 관계라는 게 심플하면 뭔가 외로운 거 같기도 하고, 또 다양하게 얽힌 관계를 원하면 그런 관계는 유지하는 게 참 어렵고. 그러함에 적당함을 찾아야 하는데 그 적당함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연연해하지 않는 거. 얼마간의 거리를 두는 거. 사실 영화 안의 치히로는 보는 사람들의 시선마다 다양한 감정들과 생각을 낳는 거 같아요. 그래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꺼리도 많아지는 거 같고요.
모쪼록 저는 랜만에 힐링하면서 만났던 영화가 아닌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추천드리고 싶은 일본 영화입니다. 이상으로 250번째 리플레이 넷플릭스 영화 <치히로 상>의 리뷰를 마칠게요.